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선’을 행복(eudaimonia)으로 규정한다. 그는 인간의 고유 기능을 이성적 활동으로 보고, 이성에 따른 훌륭한 행위가 지속될 때 비로소 참된 행복에 이른다고 본다. 정치학은 모든 학문 중에서 이러한 ‘좋음’을 실현하는 궁극적 학문으로 제시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며, ‘좋음’은 단일한 보편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고 구체적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미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형성되며, 쾌락과 고통의 훈련을 통해 완성된다. 중용은 미덕의 핵심으로,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의 ‘적절한 상태’를 이성적 판단으로 찾아야 한다. 용기, 절제, 후함, 자부심, 온유 등 여러 미덕이 이를 구체화하며, 정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실현되는 완전한 미덕으로서 분배적·조정적·정치적 정의로 구분된다. 또한, 지적 미덕은 실천적 지혜와 철학적 지혜로 나뉘며, 참된 미덕은 실천적 지혜와 결합할 때에만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선하다고 인정하지만 최고선은 아니라고 보며, 최고의 행복은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삶’에서 실현된다고 결론짓는다. 관조는 인간의 신적인 이성 활동으로 외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으며, 법과 제도는 이러한 미덕을 사회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장치로 제시된다. 즉, 행복은 우연이 아니라 학습과 습관, 법적 질서를 통해 형성되는 윤리적·정치적 완성의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세 가지 핵심 특징
1. 목적론적 자연관에 기초한 행복론 (Teleological Ethics)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그의 목적론적 자연관(teleological view of nature)에서 출발한다. 모든 존재자는 자신에게 고유한 목적(telos)을 지니며, 인간 또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기능을 완성할 때 ‘좋음(善, agathon)’에 도달한다.
그는 “모든 인간 활동은 어떤 좋음을 지향한다”고 보며, 그 궁극적 목적(최고선, the highest good)을 ‘행복(eudaimonia)’으로 규정했다. 이 행복은 감각적 쾌락이나 일시적 만족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탁월하게 살아가는 삶 전체에서 실현되는 완전한 상태이다.
따라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궁극적 질문은 “어떤 종류의 삶이 좋은 삶인가?”이며, 행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목적 그 자체로 제시된다. 정치학이 모든 학문 위에 있는 이유도, 그것이 공동체 차원에서 이러한 ‘좋음’을 실현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2. 덕(virtue)과 습관(hexis)에 대한 실천적·경험적 접근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와의 결정적 차이로, ‘앎’만으로는 덕스러운 삶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지식이 곧 덕(knowledge is virtue)”이라며 모든 비도덕적 행위를 무지로 돌린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옳은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 간극을 ‘아크라시아(akrasia, 자제력 없음)’라 부르며, 진정한 윤리적 삶을 위해서는 이 간극을 극복하는 습관(hexis)**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덕은 이론이 아니라 행위와 선택의 습관화로 형성된다. 예를 들어 용기란 단순히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에서 무엇이 두려워해야 할 것인지 ‘숙고하고 선택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는 모든 도덕적 미덕을 ‘중용(meson)’의 개념으로 설명하며, 이는 단순한 산술적 평균이 아니라 행위자와 상황, 목적에 따라 이성이 판단한 최선의 중간을 의미한다. 지나친 분노와 무감각 사이의 ‘온유’, 인색함과 낭비 사이의 ‘후함’, 비겁과 만용 사이의 ‘용기’처럼, 중용은 구체적 맥락 속에서 훈련되고 내면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윤리학을 추상적 사변이 아닌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영역으로 확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 정치학과 맞닿는 경험적 학문임을 보여준다.
3. 삶의 유형과 관조적 삶의 우월성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란 어떤 방식의 삶인가(How to live well?)”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는 인간의 삶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 쾌락적·물질적 삶 – 재물이나 감각적 즐거움에 목적을 두는 삶.
- 정치적 삶 – 공동체의 선을 추구하며 명예를 목표로 하는 삶.
- 관조적 삶(theōria) –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삶.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ōon politikon)’로 규정하며, 정치적 삶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세 가지 삶 중에서 가장 완전하고 신적인 삶은 관조적 삶이라고 결론짓는다.
관조는 외적 조건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이성의 최고 활동이다. 따라서 궁극적 행복은 정치적 성공이나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이성적 사유와 성찰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완성하는 데 있다.
결국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종착점은 윤리적 원칙들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공간이 폴리스(polis)임을 밝히는 데 있다. 개인의 미덕은 공동체적 제도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으며, 법과 제도는 윤리적 훈련을 지속하게 하는 실천적 장치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