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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Nov 12, 2025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1~5권은 인간의 본성과 국가의 기원을 탐구하며, 국가의 구성 원리와 다양한 정체(政體)의 성격 및 변혁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모든 공동체가 어떤 ‘좋음(agathon)’을 실현하기 위해 형성된다고 보고, 그중에서도 국가(polis)가 가장 완전한 공동체로서 최고의 선(善)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적 존재(zoon politikon)이며, 언어(logos)를 통해 정의(dike)와 법(nomos)을 인식하고 공유함으로써 공동체를 형성한다. 따라서 국가는 인위적 계약의 결과가 아니라, 가정(oikos)과 마을(kome)의 발전을 통해 자연스럽게 완성된 공동체이며, 정의를 질서로 삼아야만 인간이 “가장 훌륭한 동물”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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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국가(polis) 이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만약 국가가 생기기 전에 인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거나 신에 불과하다. 인간은 단순히 먹고 자는 생물적 존재가 아니라, 언어(logos)를 통해 정의와 부정의, 선과 악, 이익과 해로움을 구별하고 이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도덕적 판단과 공동체적 규범을 표현하는 능력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법과 정의를 세우고 국가를 형성한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 본성의 산물이자 자연적 존재이며, 인간은 국가 공동체 속에서만 비로소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완성된다.

 

국가의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는 주인과 노예,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자연적 질서에 따라 형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인간 사회의 ‘자연적 분화’로 간주하며,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자연의 보편적 질서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법적 노예와 자연적 노예를 구분하며, 타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본성상 유익한 자도 있지만, 힘에 의한 노예화는 부당하다고 본다. 또한 재산 획득 기술(chremastike)을 가사 관리(oikonomia)와 구분하며, 생필품을 위한 재산 획득은 자연스럽지만, 무한한 부의 추구나 고리대금은 자연에 반하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로 비판한다. 이는 훗날 경제 활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규범적 윤리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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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게 노예의 존재는 단순한 사회적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인간이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적 전제였다. 그는 인간이 폴리스(polis) 안에서 로고스(logos)를 통해 이성과 덕을 실현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단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즉,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서 사유하고 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생필적 노동을 대신 수행해야 하며, 바로 이 때문에 노예의 존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국가가 자연의 산물이라면, 노예 역시 자연이 예비한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연적 노예(natural slave)’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의 노예제는 전쟁 포로나 관습적 노예제에 기반했기에, 그가 말한 자연노예와는 달리 많은 노예들이 본성상 자유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노예가 자연노예는 아니며, 법(nomos)과 관습에 따른 ‘필연적 노예제’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연노예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이성을 스스로 활용할 수 없으므로 타인의 이성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오히려 이롭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성은 정치참여에서 배제된 대신 가정(oikos) 내의 ‘노예경영자’로서 역할을 맡았고, 남성은 시민으로서 정치와 공적 덕의 실천을 담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권에서 이러한 가정·노예·시민의 위계를 통해 폴리스 내부의 질서와 기능을 설명하며, 가정의 재산은 생존이 아닌 ‘훌륭한 삶’을 위한 한정된 정도로만 소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2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국가』와 『법률』을 비판하며 이상국가론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지나친 통일성이 국가의 본성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국가는 다양한 인간들로 이루어진 복합체이기에 사유재산과 가족 제도를 완전히 공유하는 것은 현실적·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팔레아스, 힙포다모스, 스파르타, 크레타 등의 제도를 분석하며, 법과 제도가 인간의 욕망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의 덕을 유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결국 좋은 국가란 물질적 평등이 아니라 도덕적·교육적 평준화, 즉 시민의 덕성 형성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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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수호자 계급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원인이 가족과 재산 소유에 있다고 보고, 이를 없애기 위해 배우자와 자식을 공유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람은 본래 자기 것에 더 애정을 가지므로,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하면 책임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무관심과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는 지나친 통일이 아니라 적절한 차이와 다양성 속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재산과 가족은 폐지할 대상이 아니라 덕과 절제를 통해 올바르게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 보았다.

 

3~4권에서는 국가의 본질을 ‘시민의 공동체’로 규정하며, 시민의 정의를 “공직과 재판에 참여하는 자”로 한정한다. 정체(政體)(지배와 피지배의 원리)는 최고 권위를 가진 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공익을 위해 통치하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공익을 추구하는 정체는 왕정, 귀족정, 혼합정(이름을 붙일 수 없는 집합명사;politeia)) 이고, 사익을 추구하는 왜곡된 형태는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정과 과두정을 현실의 주요 정체로 보며, 중산계급이 중심이 되는 혼합정이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형태라고 강조한다. 이는 “중용의 정치철학”이자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의 도덕적 중용 개념을 정치 질서에 적용한 것이다. 법의 지배가 인간의 지배보다 우월하며, 법이 결정하지 못하는 사안만이 통치자의 재량에 맡겨져야 한다는 원칙 또한 여기서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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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시민들의 공동체이며, 어떤 정체(政體, constitution)인가를 구분하는 기준도 바로 누가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정체는 시민이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며, 민주정에서는 다수가, 과두정에서는 부유한 소수가 시민권을 갖는다고 본다. 따라서 시민권의 범위가 넓을수록 정체는 민주적으로, 좁을수록 과두적으로 기운다.

한편, ‘훌륭한 시민’과 ‘훌륭한 인간’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훌륭한 시민은 자신이 속한 정체의 헌법적 질서(nomos)에 따라 잘 복종하고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윤리학에서 말하는 보편적 덕(virtue)과는 다르다. 어떤 정체에서 훌륭한 시민이라 하더라도, 그가 반드시 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정치적 덕과 도덕적 덕 사이에는 간극(gap)이 있으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덕’을 ‘정체의 유지에 필요한 덕’으로 한정한 데서 비롯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4권에서 이상적인 정체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체들, 특히 이미 타락한 형태의 정체들을 분석한다. 그는 정체를 단순히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하지 않고, 각 정체 내부에도 질적 차이와 정도의 구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참주정·과두정·민주정은 모두 사익을 추구하는 왜곡된 형태이지만, 그 안에서도 더 나은 형태와 더 타락한 형태가 있다.

예컨대 참주정 중에서도 법에 따라 통치하거나 일정한 제약을 받는 유형은 비교적 덜 나쁘며, 과두정이라도 법이 지배하고 시민 일부에게 공직이 개방되는 경우는 더 안정적이다. 민주정 역시 무질서하고 감정적인 형태보다, 법이 통치하는 민주정이 훨씬 낫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 정체의 ‘좋음’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법의 지배와 중용의 원칙에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즉, 그는 현실의 정치질서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기보다, 각 정체 내부의 균형과 절제의 정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하며, 바로 그 점에서 그의 정치학이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띤다.

마지막으로 5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체의 변혁과 보존의 원인을 분석한다. 모든 정치적 혁명은 평등과 정의의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비롯되며, 과도한 불평등과 한 계층의 팽창은 국가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그는 민주정의 변혁 원인을 민중선동가의 무절제에서, 과두정의 원인을 배타성과 부의 집중에서 찾았다. 정체의 보존을 위해서는 시민의 덕성과 교육, 그리고 중산계급의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특히 과두정에서는 빈민을, 민주정에서는 부자를 배려해야 하며, 모든 정체의 지속은 “중용의 정신”과 정체에 맞는 교육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이로써 『정치학』은 윤리적 덕(‘좋은 삶’)이 정치 공동체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탐구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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